르완다 르완다

1994 4, 당시 프랑스 유학생이었던 나는 그 후로도 지금까지 잊지 못할 충격적이 장면을 TV에서 보게 되었다.

 

몽둥이, 죽창, , 낫 등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흑인 청년들이 중앙 아프리카 르완다의 한 거리를 몰려 다니가다, 한 모퉁이에 아무런 적의 없이 앉아 있던 다른 청년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묻는 것 같더니만, 느닷없이 낫으로 머리를 찍어 내리는 장면 이였다.

 

가격 당한 청년은 피를 뿌리며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고, 다시 그 위를 다른 청년들의 몽둥이와 칼이 다시 처참하게 난도질을 가하는 것이 였다.

 

이 장면은 곧바로 거리의 다른 학살 장면과 더미더미를 이뤄 쌓여진 끝없는 시체의 산들로 연결되었었다.

 

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폭력적 이미지의 충격에, 학살의 이유 등을 알아보려 하기는 커녕 빨리 그 장면들을 잊으려 애썻음에도 불구하고, 결국 몇 번을 꿈속에서 다시 시달렸어야 하기까지도 했었다.


15
년이 지난 지금, 르완다 정부가 그 대학살에 개입 책임을 물어 당시 François Mitterrand (프랑수와 미테랑), Edouard Balladur (에두와르 발라듀르) 등 당시 프랑스 정부 최고 책임자들을 기소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, 다시 그 간신히 지워버린 이미지의 충격에 휩쌓이게 되었다
.


르완다 대학살
(
Ghosts of Rwanda)


+++

1994 4 6일 밤, 르완다와 부룬디의 대통령 및 르완다 국가/군 주요인사들을 태운 팔콘 비행기가 (밝혀지지 않은) 로켓 공격을 받아 추락, 전원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며, 더군다나 다음 날 수상을 포함한 르완다 주요 정부 요인들이 UN에서 파견한 10명의 벨기에 병사와 다른 2명의 프랑스 장교와 함께 살해 당하게 된다.

긴급히 구성된 르완다 임시정부는 위 사건의 배후로 그들의 숙적인 투치(Tutsi)족을 지목하고 대대적인 투치족 학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.

약 100일간에 걸쳐 100만이 넘는 투치족 및 온건파 후투(Hutu)족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그 어떠한 이유도 장소도 안 가린채 이 야만적인 대학살의 희생양이 되었다.




르완다의 위치 (경기도 면적의 약 2배) 와 "1000개 언덕의 나라"라 불리는 르완다의 풍경



"1000개 언덕의 나라"라는 별명을 갖은 르완다에서는 원래 전통적으로 부족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. 같은 혈통을 갖고 같은 언어와 종교를 갖고 있으며 모두가 같은 한 사람에 의해 이끌어지는 단 1개의 거대한 집단(민족), 특정 지역에 근거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이동하며 살고 있었다.

처음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이 르완다에 도착했었을 때 (독일 그리고 벨기에),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이 거대한 집단은 그들의 유럽식 기준에 의해서는 이해되기가 대단히 힘들었을 뿐 아니라, 통치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. 그들은 르완다인들을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단순히 자신들의 시각으로 생김새와 종사하는 일에 따라 크게 세 부족으로 구분해 버리기로 결정했다.

덩치가 조금 더 크며 피부색이 조금 더 밝고 남을 지휘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더 좋아하는 이들을 그룹지어 투치족이라 불렀으며, 다른 편의 사람들을 후투족 그리고 또 다른 편의 덩치가 아주 작고 짙은 피부색의 사람들을 트와(Twa)족이라 불렀다.

당연히 모든 행정직은 투치족에게만 허용되는 등, 투치족은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는 혜택을 누렸을 뿐 아니라, 이러한 구분은 식민통치사회 내내 실제적인 사회적 구조로 굳어져 내려오게 된 것이다.

게다가 투치족은 르완다의 토착 농경족으로, 후투는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이주해 온 부족으로, 그리고 트와는 피그미족의 한 부족으로 묘사되는 등, 르완다 고대역사에서까지도 심각한 왜곡을 남기게 된다.

이렇게 투치족을 최상위로 한 '카스트' (사회 역할에 따른 계급) 사회는 1959년까지 지속되나, 르완다 독립의 과정에서 투치족에게 위협을 느낀 벨기에가 그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를 후투족으로 바꾸면서 투치족 권력은 몰락, 후투족이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된다.

1961년 르완다에 세워진 독립 후 첫 번째 정부는 후투족에 의해서 장악되며, 그 이후 르완다의 역사는 수 차례의 투치족에 의한 후투족 공격과 그에 따른 보복성 후투족 학살로 점철되어 버린다.




by 프리스코 | 2008/08/09 18:00 | 생각 하는대로...! | 트랙백 | 덧글(0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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